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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의 시대

. 12 min read . Written by 봄을기억해
각자도생의 시대

#1

“여기로 지나가지 마세요. 오늘 영업 안 합니다.”

이제 막 들어가려던 문을 걸어 잠그며 거칠게 말하는 직원의 목소리에 나를 비롯해 그곳을 지나가려던 사람들 모두가 당황했다. 이곳은 걸어온 방향에서 가장 빠르게 지하철로 갈 수 있는 지하 통로고, 저 브랜드는 그 통로에 입점한 상가일 뿐인데 지하철로 가는 길을 이렇게 막아도 되는 건가? 여기 장사가 안돼서 물건들을 정리하기로 결심했나? 아니, 그렇다고 할지라도 이 길은 모두가 사용하는 공간인데 무슨 권한으로 잠근단 말인가? 아마 그 앞에서 제지당한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옆에 있던 누군가가 항의하듯 말을 건넸지만 직원은 단호하게 말했다.

“오늘은 여기로 지나갈 수 없어요. 돌아가세요.”

이래서야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돌아섰다. 나 같은 직장인에겐 일분일초가 아까운 평일 저녁 아니던가. 퇴근 후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던 길이었기에 당황스럽기는 할지언정 여기서 더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약속을 지키는 게 우선이다. 그렇게 조금 돌아가 다른 방향의 입구로 들어서려고 했다. 아니, 들어서려고 했‘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평소와 다른 풍경에 결국 발을 멈추고 말았다. 대체 이건?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상황을 마주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하는 직감이 드는 그런 순간 말이다. 입구에 모여든 십여 대의 경찰차와 구급차를 바라보는 내 심정이 딱 그랬다. 근처에는 여기저기 사람들이 모여들어 각자 소란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무언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졌구나 하는 심각함을 느끼며 주변의 풍경을 영상으로 남기고 있는 때, 바로 여자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어디야? 톡 보면 답장 줘!”

다급한 메시지와 함께 날아온 뉴스는 서현역 칼부림 사건의 속보였다. 바로 조금 전 들어가려고 했던 그 지하철역이다. 그녀는 내가 서현역 부근에서 약속 장소로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소식을 접하자마자 연락을 취한 것이었다. 빠르게 확인해 보니 트위터에는 서현역-AK플라자 안에 있던 누군가가 현장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사진과 글을 게시해 둔 상태였고, 인스타를 비롯한 SNS에는 갖가지 자극적인 정보가 재생산되어 퍼지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당시 서현역을 지나던 분당 지하철은 경찰의 권고로 무정차 운행하여 지나갔다고 한다. 소식을 접한 나는 괜스레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당시에는 범인이 잡혔는지를 알 수 없는 상태였기에 우선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으로 버스를 찾았다. 그렇게 버스에 타고나서도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만약 범인이 이 버스에 타기라도 했다면?

지금도 선명히 기억난다. 그날은 지나치게 날씨가 좋은 날이었다. 찍는 풍경이 모두 그림이 될 만큼 날씨가 모두 다한 날. 일 년을 통틀어서도 몇 번 없을 예쁜 하늘이 펼쳐진 이 좋은 날씨에 그는 불쑥 나타나 지옥도의 풍경을 사람들 앞에 내보인 것이다. 범인은 차를 몰고 와서 AK 플라자 앞에 있던 사람들을 차로 치어 다치게 하고, AK 플라자 안에 들어서서는 칼을 뽑아 들어 사람들을 해코지했다고 한다. SNS에는 칼을 들고 사람을 쫓아가는 범인의 모습이 찍힌 CCTV 영상도 있었다.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버스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마냥 안도할 수는 없었다. 이 사건은 내가 지하철에 들어가기 불과 10~20분 전에 일어난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저기서 중상을 입은 것이 나였을 수도 있었다는 아찔함, 비교적 이런 류의 범죄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해 왔던 공공장소가 범행의 장소가 된 것에 대한 놀람, 그리고 내가 자주 다니는 장소에서 발생했다는 사실 그 자체로 무척 두렵게 느껴졌다. 또한 미리 대비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재해재난 같은 사건이라는 점에서도 무기력감을 느끼기 충분했다. 내가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어떻게 해야 그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런 나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그 후의 일이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우후죽순 칼부림 예고글이 올라온 것이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던 일상, 지극히 평범한 삶의 순간들이 무너져가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리는 듯했다. 경찰국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는 상황을 억누르고자 모든 예고자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들였다. 그렇게 잡힌 이들이 6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굳이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을 고쳐 쓰겠다며 경찰에게 도전장을 내민 자들, 삶의 따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금방 지우면 문제없겠지’하며 장난성 예고글을 올린 자들이 있었을 테고, 그중 누군가는 진심으로 칼부림을 예고한 이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들의 동기가 무엇이든 신림과 서현역에서 일어난 칼부림 사건들이 기폭제가 된 것은 분명해 보였다.


#2

최근 보게 된 영상에서 각자도생이라는 키워드의 변화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들었다. 이 키워드가 본격적으로 등장하여 많이 사용되던 시기에는 경제적인 관점에 한해서 제한적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부동산 경기의 거품과 영끌족, 전세사기와 같은 맥락에서 쓰일 때의 각자도생은 자신이 결정한 선택에 대한 경제적 책임을 지거나 경기불황의 상황이 도래했을 때 각자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식으로 쓰였다고 한다. 그러다 강력 범죄에 해당되는 사건들이 속속들이 일어나고, 이태원 참사나 오송 참사와 같은 사고에서 시민들을 지켜줄 시스템의 부재를 사람들이 느끼게 되면서 각자도생은 말 그대로 개개인의 ‘생존’을 뜻하는 의미로 변질되었다는 얘기였다.

이러한 의미의 변화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삶이 위협받는 순간이 언제든 올 수도 있다는 불안감, 사회적 유대와 신뢰가 사라져 가는 시대적 상황 속에 놓이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은 물론이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안에 존재하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신뢰의 상실이기도 했다. 기본적인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개인이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은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일상적으로 삼단봉을 품에 넣고, 방탄조끼를 입고, 차 안에 구명조끼를 두고 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3

아마도 작년 즈음일 것이다. 당시 국정감사 자리에서 나왔다는 얘기가 생각난다. 한 국회의원이 경제적 주체 중 하나인 가정이 무너지고 있음을 성토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사채를 대출할 수 있는 사이트를 언급하며, 이 사이트를 살피다 보니 우려스러운 통계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몇 년간은 수백만 원에서 천만 원이 넘는 돈을 빌리는 이들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고작 20~50만 원 정도의 돈을 빌리려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었다는 것이다. 국감에서 그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 같냐고 금융당국에 물었다. 잘 모르겠다고 얼버무리는 책임자에게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그가 목매인 목소리로 꺼낸 말은, 이 통계는 이제 당장 먹고살 돈조차 없는 이들이 그만큼 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했다. 금융당국이 발간한 보고서 어디에도 이런 부분을 들여다보는 내용은 없었다며 현재의 금융당국의 기조와 정책을 비판하는 것이 주요 논지였다.

이 이야기가 유독 기억에 남은 건 다른 정치인들이 으레 꺼내드는 정치적 대립이나 이슈를 만들어 꼬투리를 잡는 것이기보다는 진정으로 국민의 어려움을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다면 말할 수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건조한 숫자들 사이에서 국민들의 아픔을 엿본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사회가 팍팍해진 것도 사실일 것이다.


#4

신림에서 칼부림을 한 범인은 “나는 불행하게 사는데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고 분노에 가득 차 범행을 했다”라며 범행 동기를 시인했다. 경찰의 조사 결과 그의 범행은 가족관계 붕괴, 사회생활 부적응, 실연, 경제적 곤궁 등이 겹친 “현실 불만, 좌절” 상태에 다다라 행동한 결과라고 한다. 범죄학을 전공한 한 교수는 “이런 이들은 더 이상의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분노 표출만이 목표가 되어 오로지 그것 하나만을 위해 달려 나가는 상태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내부에 쌓인 불만이라도 반사회적 형태로 표출해 보겠다는 최후의 몸부림인 셈이다.

나는 범인을 옹호할 생각도 없고, 범죄자들을 가련히 여기고 싶지도 않다. 그렇지만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극단적인 행동을 하도록 자극하고, 내몰고 있는 것은 경제적 사각지대를 돌보지 못하는 사회 시스템이 한몫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는 비단 ‘묻지마 범죄’에만 해당되는 문제도 아니다. 경제적 빈곤으로 인한 20, 30대의 은둔형 외톨이, 고독사 문제도 굉장히 심각한 것으로 알고 있다. 경제적 양극화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한계를 해결하고, 국민들의 안녕과 자유를 보호하고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는 한 우리는 각자도생의 시대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우리 사회가 더 나은 곳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발판이 되기를, 그리고 국가가 재해재난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고 책임지며 기본적인 신뢰를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들을 만들어갈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