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essay

때 아닌 사진 수업

. 10 min read . Written by 봄을기억해

비어있는 컵을 하나 상상해보실래요? 네, 앞에 놓여 있는 커피잔 같은 것이어도 좋고 커다란 맥주잔이어도 좋습니다. 컵을 떠올리셨나요? 좋습니다. 이제 그 컵에 동일한 양의 물을 채울 건데요. 1/500초 만에 그 컵에 채울 수 있는 파이프가 있고, 30초가 걸려야 그 컵에 채울 수 있는 파이프가 있어요. 1초도 아니고 1초를 다시 500개로 나눈 1/500초. 상상이 가세요? 그토록 짧은 시간에 그 컵에 물을 따르려면 파이프가 아주 두터워야 하겠죠. 반대로 30초나 걸려서야 그 컵을 동일하게 채울 수 있다면 상대적으로 그 파이프는 가는 편일 거예요. 정수기에 컵을 대면 졸졸 흐르듯이 그 안을 채우는 것처럼요. 네. 맞아요. 여기서 시간은 셔터스피드고, 파이프의 너비는 조리개를 뜻합니다. 한 컵의 물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밝기에 해당하는 빛의 양이구요.

우리는요. 여기서 빛을 한 컵만 담을 수도 있고, 흘러넘치도록 담을 수도 있고, 반절만 담을 수도 있어요. 대개는 한 컵을 담는 게 맞아요. 그게 우리 눈으로 보는 거랑 비슷하게 보일 테니까요. 그런데 그 한 컵을 바꿔보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예를 들어 낮에도 밤을 보고 싶다면 1/16000초로 사진을 찍을 수 있죠. 절반 정도가 아니라 빛이 거의 없다시피 하면 밤을 마주할 수 있는 거예요. 반대로 밤에 30초, 1분이 넘게 사진을 찍으면 대낮같이 환한 풍경을 만들 수도 있어요. 밤 기준으로는 빛을 한참이나 흘러넘치도록 받는 거지만요. 또, 낮에 빛을 받는 파이프를 아주 조금만 열어두고 30분이 넘도록 빛을 받게 하면 유령도시처럼 만들 수도 있죠. 30분이라는 시간 동안 한 자리에 굳건히 버티고 있는 건 오직 건물들과 주차된 자동차들 뿐이기 때문에요.

신기하다고요? 1837년에 촬영된 최초의 사진에는 오로지 한 사람만 찍혀있다는 걸 아시나요? 은염 필름에 빛이 기록되는 20분간 동안 꼼짝 않고 한 자리에 있었던 덕분에 사진에 찍힌 최초의 사람이 된 거죠. 그 사람은 도심 한가운데서 구두를 닦는 서비스를 받고 있었다고 해요. 막상 그때 그 사진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길가에 홀로 덩그러니 놓여있는 느낌이어서 사람이라기보다는 원래 그렇게 세워둔 동상 같은 느낌이지만요.

사람이 출현한 최초의 사진. 자세히 보면 좌측 하단에 한 발을 올려둔 채 서있는 사람이 보인다.

이제 아시겠어요? 여기 이 사진들이 흔들린 이유가 바로 빛 한 컵을 채우는 데 걸리는 시간 때문이라는 것을요. 빛을 한 컵 담기까지 필요한 시간은 사진을 찍을 때의 환경에 따라 매번 달라져요. 우리 눈에 충분히 밝은 것처럼 보여도 카메라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는 거죠. 셔터를 누르는 손이 그 한 컵의 빛을 담는 시간만큼 흔들리지 않아야만 사진이 흔들리지 않아요. 흔히 결혼식장이나 사진관에서 사진사들이 플래시를 쓰는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순간적으로 아주 강렬한 빛을 이용해서 그 순간의 풍경을 담을 빛 한 컵을 채우는 거예요.

네, 맞아요. 잘 아시네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사진은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을 기록하는' 게 아니에요. 엄밀히 말하면 사진은 렌즈로 모여든 빛을 기록하는 것이죠. 그 빛이 담기는 시간은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 눈으로 보는 그대로를 담아낸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이 야경 사진을 보세요.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은 흔적도 없고, 빛의 궤적만 남아있잖아요? 이런 건 우리 눈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장면이죠.

심지어 '객관적'인 사진 또한 존재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제가 명절의 고속도로 귀경길이 정체되는 느낌을 강조해야 하는 보도사진가라고 가정해볼게요. 똑같은 장면을 찍어도 렌즈를 어떤 것을 사용하냐에 따라서 사진 속의 원근감이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저라면 망원 렌즈로 고속도로에 멈춰있는 차들을 찍어서 원근감을 압축시킬 거예요. 이렇게 하면 자동차와 자동차 사이가 훨씬 오밀조밀하게 표현돼서 귀경길이 훨씬 빽빽하고 정체된 느낌으로 사진 속에 담기죠. 광각 렌즈로 이런 느낌은 낼 수 없어요.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시겠어요? 사진은 결국 찍는 사람이 선택한 것에 따라 어떤 의도를 가질 수 있다는 거예요. 심지어 객관성을 담보해야 할 것 같은 뉴스의 '보도사진'마저도요. 이런 표현을 조절하는 요소로는 조리개, 셔터스피드, 렌즈, 구도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세세한 차이들을 하나하나 알게 되면 사진은 현실을 담는다기보다 사진가가 나타내고 싶은 것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지요. 사진을 잘 찍고 싶다고 하셨죠? 그럼 이제 막 한 걸음 내디신 거예요.

구도는요. 많이 연습해보셔야 할 거예요.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두 가지만 얘기할게요. 첫째, 찍고 싶은 대상을 정가운데에 놓지 않으려고 해 보세요. 그렇게만 해도 식상한 사진에서 벗어나요. 둘째, 찍고 싶은 대상의 전부가 반드시 사진 프레임 안에 다 들어와야 한다는 편견을 버리고 과감히 다가가세요. 아, 두 번째는 매그넘의 사진가로 유명한 로버트 카파가 얘기한 겁니다. 정확히는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했었네요. 로버트 카파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만큼이나 전설적인 사진가죠.

카메라를 추천해달라고 하시면, 글쎄요. 저는 당신의 눈에 예뻐 보이는 카메라를 선택하라고 할게요. 카메라가 사진가의 눈에 예쁘고 마음이 가야 더 많이 사진을 찍게 되거든요. 그래도 수동으로 조작하는 기능은 있는 편이 사진을 배우는 데 좋아요. 그런 점에서 인스탁스 미니나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예쁘긴 하지만 제외해주세요. 어, 로모(Lomo)도 빼주세요. 필름을 좋아하시면 니콘 FM2나 펜탁스 ME Super, 미놀타 X-700 같은 것들이 좋긴 합니다. 저는 FM2 뷰파인더를 처음으로 봤을 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물체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렌즈의 초점링을 이리저리 돌려보면, 초점이 맞는 거리에 있는 물체만 정상적으로 표시되거든요? 초점이 맞지 않는 부분은 물체의 위아래가 서로 틀어져 보이는데 이건 정말 다시 봐도 놀라워요. 초점링을 돌릴 때마다 이렇게..어, 디지털카메라요? 디지털카메라는 지금 말고 나중에 다시 얘기해드릴게요.

그런데 어떻게 카메라를 구입하실 생각을 했어요?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것을 찍는 게 요즘 시대 아닌가요. 그 어느 때보다 사진을 찍기 쉬워지고, 소비하기도 쉬워진 시대에 카메라를 찾는 사람은 귀하죠. 불과 10년 전쯤만 해도 애기 찍어주겠다고 아빠들이 너도나도 하나씩 장만하는 게 바로 카메라였는데 요즘은 그렇지도 않잖아요. 분명 스마트폰보다 카메라가 사진 찍기에 더 좋은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밖으로 나갈 때 무언가를 하나 더 챙겨야 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할 거냐고 물으면, 대부분은 '아니'라고 대답할 거거든요. 스마트폰의 휴대성이 좋다는 점에서 카메라가 따라갈 수 없는 점이 있기도 하고 말이죠.

저요? 저는 카메라를 들고 찍는 편을 좋아해요.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딱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손맛'이랄까요. 편리한 스마트폰을 두고 그저 요식행위를 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사진을 찍기 위해 필요한 모든 과정을 좋아해요.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취미생활이다 보니 이제는 그저 사진을 담는 것이 전부가 아니더라고요. 묵직하게 손에 쥐어지는 차가운 금속의 느낌부터, 제 눈앞에 나타난 순간을 두고 '이 상황에서 ㅇㅇ로 찍어보면 ㅁㅁ 같은 느낌을 담을 수 있을 것 같다'를 시도해보는 재미가 있거든요. 다양한 렌즈 덕분에 할 수 있는 표현법도 무시할 수 없는 메리트죠. 스마트폰으로 아예 사진을 못 찍는 건 아니긴 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아무래도 좀 더 주변을 더 관찰하게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열 번 중 일곱 번 정도는 제 가방에 카메라가 있어요. 나머지 세 번은 맥북이 들어있고요. 아, 제가 얘기하지 않았나요? 저 개발자로 일하고 있어서요. 아무튼, 오늘 사진에 관심을 가지는 분을 만나 저도 즐거웠어요. 마음에 드는 카메라 구입하게 되면 저도 보여주세요. 다음엔 출사라도 한 번 같이 가보실래요?